마지막 때의 현상은 이렇다.
하나님께서는 신앙의 연조가 있는 자들을 터치한다.
의를 행하는 자는 의롭게 하고 불의 한 자는 불의 하게 내버려둔다.
지금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상황을 보면 19세기와 20세기 초반 군국주의의 시대 상황과 같이 과거의 수많은 열강들이 자신들의 유익을 위해 명분을 삼아 전쟁을 하는 모습과 같다.
그때에 우리는 징조를 바라보며 거룩한 자는 거룩하게 의로운 자는 의롭게 구별되어
주께서 주시는 면류관과 상을 바라고 예수님께서 행한 대로 갚아준다 말씀 하신 것과 같이 세상의 질서가 파괴되어지고
주님 오시는 징조가 나타날 때에 주님의 면류관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주님은 그때에 양과 염소 그리고 알곡과 쭉정이를 구별하신다.
우리의 오래 믿은 연조로 구원을 받지 못한다. 연조를 자랑하는 자가 아닌 끝까지 견디는 자가 구원을 받는다.
우리의 지금의 상황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의 모습이 된다면 우리는 과연 견딜 수 있을 것인가?
평안하고 안전한 지금도 기도 할 때마다 졸고 사모함이 없는 모습으로 예배 하는데 우리는 정신을 차리고 깨어서 주님의 상을 바라고 불로 연단한 정금이 되어야 한다.
우리의 충성은 어디에 서나 어느 곳에 서나 극한의 상황에서 시작해야 한다.
굶주림과 배고픔 속에서 야전에서 주님만 바라며 시작 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주의 일을 할 때 혹독한 훈련을 받아야 한다.
연단 이라는 것은 자기 형편과 사정에 따라 일관성 없이는 되어질 수 없다. 어느 사람과 같이 우리의 신앙 생활이 열정 없고 미지근하니 주님도 믿을 수가 없다.
신앙의 연조가 오래 되어 게으르고 불의하고 더럽고 귀신과 짝을 하니 하나님께서는 더러운 자를 그대로 불의 하게 내버려 둔다.
다니엘서에서는 이 말씀을 봉인하라 하였지만 요한계시록은 인봉하지 말라 때가 가깝기 때문 이 다라고 말씀하였다.
우리는 상을 얻는 자로 복음을 전하며 주님 앞에 순종 하여 상 받기를 바라며 성령 충만하여 마지막 때를 견뎌야 할 것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