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말세를 만난 우리에게 보여주는 증상이다.
마지막 때 돈을 사랑하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다. 바울은 돈을 일만 악의 뿌리라 했다.
우리의 의식주를 위하여 돈이 없을 수는 없다. 그러나 자기 영혼을 말씀 앞에 저울질하며 돈을 선택하는 자들이 있다.
돈은 내 영혼을 위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사용 해야 한다. 돈 만을 사랑하여 자기 영혼에 고통을 가하면 안된다. 내 영혼을 위해 살아야 한다.
마지막 때 돈 때문에 살인과 범죄를 일으키고 타인에게 고통을 가하는 것은 예삿일이 되어버렸다.
이러한 시대 속에 우리의 믿음을 측량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주일성수와 십일조이다.
간혹 물질 때문에 과감히 주일성수를 포기하고 물질을 선택하는 자들이 있다. 마지막 때에 대하여 요한계시록 22 장 11 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불의를 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되게 하라"
하나님은 한번의 주일성수를 못했다고 천벌을 내리시지 않는다. 악을 행하게 그대로 내버려두신다.
겉으로 봐서는 세상에 속한 사람인지 영의 사람인지 구별이 안될 수 있다.
또 어떤 이들은 세상에 속하여 돈을 쫓아 살다가 어쩌다 한번 나와서 떡이나 하고 예배 한다고 하고
자기를 내세우고 자랑하고 그렇게 뜻대로 안되면 삐지고 기분 상하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새힘교회의 존재의 이유는 어떻게든지 한 사람이라도 첫째 부활에 이를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교회 중심으로 가깝게 살며 언제든지 기도하고 예배하고 물질을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 되라고 비젼타운도 세워 주셨다.
주님이 우리에게 물질이 필요하다 하실 때 밍기적대면 안된다.
우리는 경건의 모양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능력이 나와야 한다. 하나님이 지지하시고 나를 통해 일한다는 증거가 나타나야 한다.
오랜 신앙연조나 자랑하고 믿음도 하나 없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된다. 끊임없이 주님을 사랑하고 나의 보물은 주님이라고 고백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끊임없이 주님께 마음을 쏟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우리의 소원은 첫째 부활이어야 한다.
우리는 주님의 재림이 두려워서는 안된다. 우리는 돈을 들고 세상으로 가지고 가는 것이 아니라 주를 위해 사용 할 수 있어야 한다.
일례로 어느 날 한 청년에게 아침부터 성령께서 계속해서 물질을 감동하셨는데 그 청년은 즉시 하지 않고 저녁 늦게늦게 계좌이체를 하였다.
그에게는 충분한 시간이 있었지만 주님을 향한 사랑이 없었다. 온전한 마음이 아닌 것이다. 말라기에서처럼 눈 멀고 흠 있는 것을 주님께 드린 것이 된것이다.
성령께서 목사가 봉투를 만질 때에 왜 별로 감동이 주지 않았냐? 그 이유는 "계좌이체"였다.
그 청년의 마음이 상태가 성령을 통하여 목사에게 전달이 되었다. 별로 감동이 안되는 것이었다. 우리는 이와 같이 항상 주님 앞에 마음먹은 그 순간부터 철저히 준비해서 드려야 한다.
목사가 어제 수요예배 설교를 위해 준비를 다하고 올라 가려는데 갑자기 성령의 감동이 너무 되어 내 지갑의 지폐가 딱! 준비 되었다.
그때에 성령의 감동 되어지는 대로 교회의 환자들을 위해 예물을 준비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뜻 없이 받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 받으실 때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우리는 돈을 사용하되 내영혼과 하나님 나라의 일을 위해 사용하고 그로 인하여 내 영육이 풍성하길 바랍니다.